눈으로만 봤던 납땜을 직접 해봤다.


납땜을 처음 해봤다.

결과부터 말하면 모니터는 살리지 못했다.

대신 삼성 오디세이 OLED G8 32인치 최신형을 새로 샀다.

수리비 40만 원이 아까워 직접 고쳐보려다가 납땜 도구와 부품을 사고, 마지막에는 새 모니터까지 산 이야기다.

경제적인 선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아니었던 것 같다.

먼저 타임라인

이번 일은 대략 이런 순서로 흘러갔다.

순서있었던 일결과
1모니터에서 가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모니터를 껐다 켜면 다시 나왔다
2사용 중 화면이 갑자기 꺼졌다이후 화면이 다시 켜지지 않았다
3다른 기기와 케이블을 연결하고 전원 리셋도 해봤다아무 변화가 없었다
4공식 서비스센터 수리비를 알아봤다40만 원대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5모니터 구매 가격이 76만 원이었다는 것을 다시 생각했다직접 고쳐보기로 했다
6유튜브에서 보던 ‘무적의 380도’가 떠올랐다왠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7모니터를 분해하고 챗지피티와 고장 원인을 찾아봤다파워보드와 콘덴서를 의심했다
8알리익스프레스에서 멀티미터, USB-A 현미경, 납땜 도구를 주문했다없는 게 없었다
9오랜만에 멀티미터를 사용했다학교에서 배운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10처음으로 납땜해서 콘덴서를 교체했다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11모니터를 다시 조립하고 전원을 연결했다증상은 그대로였다
12수리를 포기했다삼성 오디세이 OLED G8을 샀다

수리는 실패했다.

그래도 눈으로만 봤던 납땜을 직접 해본 것은 꽤 재미있었다.

시작은 모니터 고장이었다

약 76만 원에 구매한 MSI QD-OLED 모니터였다.

처음부터 화면이 완전히 나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컴퓨터를 켰을 때 가끔 모니터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PC를 재부팅하면 다시 소리가 나왔기 때문에 Windows나 드라이버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모니터 전원만 껐다 켜봤더니 소리가 돌아왔다.

이때부터 모니터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사용 중 화면이 갑자기 꺼졌다.

그 뒤로는 아무리 전원 버튼을 눌러도 화면이 켜지지 않았다.

  • MSI 로고가 나오지 않았다
  • OSD도 나오지 않았다
  • 하단 전원 표시등도 켜지지 않았다
  • 이상하게 후면 RGB만 켜졌다
분해를 시작하기 전, 스탠드를 분리한 MSI 모니터 뒷면

다른 컴퓨터도 연결해보고, 전원 케이블과 콘센트도 바꿔봤다.
모든 케이블을 뽑고 한참 기다렸다가 다시 연결하는 전원 리셋도 해봤다.

하지만 아무 변화가 없었다.

수리비가 40만 원대라고요?

처음에는 직접 고칠 생각이 없었다.

전자제품이 고장 났으면 서비스센터에 맡기면 된다.
굳이 내가 76만 원짜리 모니터를 뜯어서 기판까지 볼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공식 서비스센터에 문의해보니 보드를 교체할 경우 수리비가 40만 원대까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잠깐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모니터는 약 76만 원에 샀다.
그런데 수리비가 40만 원대였다.

구매 가격의 절반을 넘는다.

조금 더 보태면 다른 모니터를 살 수도 있는 금액이었다.
그렇다고 76만 원짜리 모니터를 그냥 버리자니 그것도 너무 아까웠다.

사람이 수리비 40만 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평소에는 하지 않던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한번 고쳐볼까?

그전까지는 전혀 없던 수리 본능이 갑자기 생겼다.

무적의 380도 아저씨가 심어준 자신감

사실 납땜이 완전히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직접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유튜브 쇼츠에서 정말 많이 봤기 때문이다.

내 알고리즘에는 언젠가부터 고장 난 전자제품을 고치는 영상이 자주 나왔다.

그중에서도 자주 본 것이 일명 ‘무적의 380도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고장 난 기판을 잠시 들여다본다.
수상한 부품을 찾는다.
플럭스를 바른다.
380도로 맞춘 장비에서 뜨거운 바람을 쐰다.

그러면 부품이 스르륵 떨어진다.

새 부품을 붙이고 전원을 연결하면 제품이 살아난다.

영상을 계속 보고 있으면 이상한 자신감이 생긴다.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영상에서 본 380도 장비는 인두기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핫에어 리워크 스테이션, 쉽게 말하면 뜨거운 바람을 쏘는 열풍기였다.

인두기처럼 한 지점에 팁을 직접 대는 것이 아니라, 부품 주변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 납을 함께 녹이는 장비다.

문제는 내가 교체하려는 것이 영상 속 작은 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내가 빼야 하는 것은 파워보드에 다리 두 개가 박혀 있는 전해콘덴서였다.

아저씨는 뜨거운 바람으로 부품을 스르륵 들어 올렸지만, 나는 인두기 하나를 들고 콘덴서 다리 두 개와 싸워야 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상을 많이 봤으니까.

챗지피티가 설계 자료까지 찾아왔다

모니터를 열기 전부터 챗지피티에게 계속 물어봤다.

증상을 설명하고, 모니터 모델명을 알려주고, 내부 사진도 보여줬다.

후면 RGB는 켜지는데 화면과 전원 표시등은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니, 대기전원은 살아 있지만 메인 전원이 올라오지 않는 상태일 수 있다고 했다.

그다음부터는 일이 꽤 커졌다.

관련된 제품 자료와 보드 정보를 찾고, 비슷한 구조의 회로 자료까지 확인하더니 점점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어떤 보드가 파워보드인지
  • 어떤 보드가 메인보드인지
  • 어느 커넥터가 두 보드를 연결하는지
  • 어떤 콘덴서를 의심해볼 수 있는지
  • 교체품은 어떤 용량과 전압을 써야 하는지
  • 저ESR 제품인지 확인해야 하는 이유
  • 멀티미터의 검은 프로브와 빨간 프로브를 어디에 대야 하는지
  • 정상이라면 대략 어느 정도의 전압이 나와야 하는지
  • 대기전원과 메인 전원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나는 그냥 “모니터가 안 켜진다”고 물었는데, 어느 순간 챗지피티는 내 옆에서 회로도를 펼쳐놓고 작업을 지시하는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문제는 설명이 구체적일수록 나도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다.

정확한 부품과 측정 위치까지 알려주니, 남은 것은 내가 그대로 따라 하는 일처럼 보였다.

물론 실제 전자제품 수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설명을 이해하는 것과, 전원이 들어가는 실제 기판에 멀티미터를 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멀티미터까지 샀다

나는 납땜을 처음 하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집에는 인두기도 없었고, 플럭스도 없었고, 납 흡입기도 없었다.

멀티미터도 새로 필요했다.

그래서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 온도 조절이 가능한 인두기
  • 인두기 팁
  • 플럭스
  • 납 흡입기
  • 솔더윅
  • 핀셋
  • 멀티미터
  • USB-A 현미경
  • 교체할 콘덴서

모아놓고 보니 정말 수리할 수 있을 것 같은 준비물처럼 보였다.

작업대 위에 펼쳐둔 납땜 준비물들. 장갑, 공구 세트, 인두기, 납 흡입기, 솔더윅, USB-A 현미경, 멀티미터가 보인다.

그런데 요새는 정말 세상이 좋아졌다.

알리익스프레스에 검색하니 다 팔고 있었다.

전문가만 사용할 것 같은 장비부터 처음 시작하는 사람을 위한 세트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멀티미터도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샀다.

가격도 생각보다 저렴했고, 화면도 크고, 프로브도 들어 있었다.

상품 설명만 보면 전압과 저항은 물론이고 세상의 모든 전기를 측정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멀티미터만 산 것도 아니었다.

납땜 부위를 확대해서 보려고 USB-A 현미경까지 같이 샀다.

납땜 도구도 마찬가지였다.

상품 사진만 보면 전부 세계 최고의 인두기 같았다.
후기를 보면 누군가는 아주 잘된다고 하고, 누군가는 온도가 제대로 올라가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적당히 후기가 많고, 가격도 너무 비싸지 않은 제품들로 골랐다.

예전에는 이런 작업을 시작하려면 공구상가를 찾아가거나 전자부품을 파는 곳부터 알아봐야 했을 것 같다.

지금은 유튜브에서 작업 과정을 보고, 필요한 장비는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주문하고, 모르는 내용은 챗지피티에게 물어볼 수 있다.

적어도 시작하기 위한 장벽은 정말 많이 낮아졌다.

도구를 주문할 때까지만 해도 수리는 거의 성공한 기분이었다.

아직 인두기도 켜지 않았는데 말이다.

학교에서 배운 멀티미터 사용법은 어디로 갔을까

멀티미터가 도착하고 오랜만에 프로브를 잡았다.

멀티미터를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전압과 저항을 측정하는 방법을 배웠고, 실습 시간에 실제로 사용해본 기억도 있었다.

문제는 그게 기억의 전부였다는 것이다.

배웠다는 사실은 기억나는데,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다이얼을 어디에 맞춰야 하는지부터 다시 찾아봤다.

검은 프로브는 COM에 꽂고, 빨간 프로브는 어디에 꽂아야 하는지 확인했다.
DC 전압을 측정할 때는 어떤 기호를 선택해야 하는지도 다시 봤다.

학교에서 배울 때는 시험에 나올까 봐 외웠던 것 같은데, 실제로 고장 난 모니터 앞에 앉으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결국 다시 챗지피티에게 물었다.

“멀티미터는 어디에 맞춰야 해?”

“검은색은 어디에 대고 빨간색은 어디에 대야 해?”

“이 부분을 찍으면 어느 정도가 나와야 정상이지?”

챗지피티는 검은 프로브를 접지 쪽에 두고, 빨간 프로브로 측정 지점을 하나씩 확인하라고 했다.

어떤 커넥터에서는 대기전원으로 예상되는 전압이 나와야 하고, 전원이 켜진 상태라면 다른 출력도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측정할 위치와 예상되는 범위를 하나씩 알려줬다.

나는 그 설명을 옆에 띄워놓고 보드의 측정 지점을 찍었다.

멀티미터 화면에는 분명 숫자가 나왔다.

숫자가 나온다는 것만으로 조금 뿌듯했다.

콘덴서 다리에 멀티미터 프로브를 대고 전압을 확인하던 장면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지점이 있었다.

보드 위에 4R7이라고 적힌 부품이 두 개 있었는데, 그 주변 단자를 찍었을 때 전압이 서로 다르게 나왔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 부품의 역할을 완전히 이해하고 측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같은 4R7 표기가 붙은 전원부 지점에서 값이 다르게 나온다는 것은, 단순히 콘덴서 하나만 갈면 해결되는 문제는 아닐 수 있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멀티미터를 대보면서 오히려 콘덴서가 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더 커졌다.

문제는 숫자가 나온다는 것과 그 숫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챗지피티가 예상값을 알려줬지만, 실제 보드는 회로도처럼 깔끔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어느 핀이 정확한 접지인지, 지금 찍은 지점이 내가 생각한 출력이 맞는지, 전원이 들어온 상태에서 이 작업을 계속해도 안전한지 계속 신경이 쓰였다.

소프트웨어 로그는 그래도 에러 메시지라도 보여준다.

멀티미터는 숫자 하나만 보여주고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기억나지 않고, 챗지피티는 설계 자료까지 찾아와서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중간에 역할이 조금 바뀐 것 같았다.

챗지피티가 엔지니어고, 나는 프로브를 대신 대주는 손이었다.

이 모니터는 220V 전원이 내부 파워보드로 직접 들어가는 구조다. 전원 케이블을 뽑아도 내부 콘덴서에 고전압이 남아 있을 수 있다. 이 글은 내가 직접 해본 일을 기록한 것이며, 전원부 수리를 권하는 글은 아니다.

콘덴서를 의심했다

후면 커버를 분리하니 파워보드와 메인보드가 보였다.

전원 케이블이 직접 연결되는 파워보드, HDMI와 DisplayPort 같은 단자가 모여 있는 메인보드, 후면 RGB를 위한 보드가 따로 있었다.

평소에는 그냥 모니터 한 대였는데, 열어보니 각자 역할이 다른 여러 부품이 모여 있었다.

후면 커버를 열고 드러난 모니터 내부 보드 전체

증상은 조금 이상했다.

화면과 전원 표시등은 아무 반응이 없는데 후면 RGB는 켜졌다.

챗지피티와 자료를 찾아보면서 RGB를 켜는 대기전원만 살아 있고, 메인보드와 화면에 필요한 전원은 올라오지 않는 상태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러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중 내가 직접 교체해볼 수 있을 것 같은 부품이 전해콘덴서였다.

파워보드에는 1000µF 35V 규격으로 보이는 콘덴서가 여러 개 있었다.

파워보드 한쪽에 나란히 서 있던 파란색 전해콘덴서들

방열판 옆에 붙어 있던 1000µF 35V 전해콘덴서들

처음에는 용량과 전압만 같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아보니 저ESR인지, 105℃ 제품인지, 리플 전류는 충분한지, 크기와 리드 간격은 맞는지 확인할 것이 생각보다 많았다.

콘덴서 하나를 고르는 것도 꽤 복잡했다.

큰 콘덴서도 눈에 띄었다.

보드 가장자리의 큰 전해콘덴서와 주변 전원부 부품들

지금 생각해보면 콘덴서가 실제로 고장 났는지 정확하게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4R7이라고 적힌 두 전원부 지점에서 전압이 다르게 나온 것을 보고, 콘덴서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이미 콘덴서를 사두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한 번이라도 교체해서 확인해보고 싶었다.

측정 결과와 증상을 보고 확정한 원인이라기보다, 가능성이 조금 남아 있고 내가 직접 바꿔볼 수 있는 부품을 선택한 것에 가까웠다.

그래도 그때는 왠지 될 것 같았다.

인두기에서는 녹는데 PCB에서는 안 녹는다

드디어 도구가 도착했고, 납땜을 시작했다.

인두기 끝에 납을 대봤다.

바로 녹았다.

“오, 되는데?”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인두기를 PCB에 가져다 댄 다음부터였다.

인두기 끝에서는 그렇게 잘 녹던 납이 기판에만 대면 이상하게 녹지 않았다.

분명 인두기는 뜨거웠다.
납도 인두기 끝에서는 잘 녹았다.

그런데 콘덴서가 붙어 있는 부분에 인두기를 대면 납이 굳은 의지를 가지고 버텼다.

알아보니 전원부 PCB는 열을 많이 가져가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넓은 구리 면과 두꺼운 패턴이 인두기의 열을 계속 가져가기 때문에, 인두기 끝은 뜨거워도 실제 납땜 부위의 온도는 생각만큼 빠르게 올라가지 않는다고 했다.

영상 속 380도 열풍기는 넓은 영역에 계속 열을 전달했다.

반면 나는 작은 인두기 팁 하나로 열을 전부 빼앗아가는 전원부 기판과 싸우고 있었다.

같은 납인데 인두기 위에서는 바로 녹고, PCB 위에서는 말을 듣지 않았다.

조금 억울했다.

붙이는 것보다 빼는 게 더 어려웠다

머릿속으로 생각한 납땜은 단순했다.

  1. 납을 녹인다
  2. 기존 부품을 뺀다
  3. 새 부품을 넣는다
  4. 다시 납땜한다

하지만 첫 단계부터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한쪽 납을 겨우 녹이면 반대쪽은 그대로 굳어 있었다.
반대쪽을 녹이는 동안 처음 녹였던 쪽은 다시 굳었다.

콘덴서에는 다리가 두 개였고, 내 인두기는 하나였다.

납은 조금씩 녹는 것 같은데 부품은 빠지지 않았다.

힘으로 당기자니 기판의 동박까지 같이 뜯어질 것 같았다.

인두기를 오래 대면 기판이 망가질 것 같고, 짧게 대면 납이 충분히 녹지 않았다.

플럭스도 발라보고, 납 흡입기도 사용해보고, 솔더윅도 대봤다.

영상에서는 솔더윅이 납을 깔끔하게 빨아들였는데, 내가 하니 솔더윅 자체가 기판에 붙는 것 같았다.

납 흡입기도 타이밍을 맞추기 어려웠다.

납을 녹이고 흡입기를 가져가는 사이 납이 다시 굳었다.

손이 두 개로는 부족했다.

무적의 380도 아저씨에게는 영상에 나오지 않는 세 번째 손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도 계속 하다 보니 조금씩 요령이 생겼다.

새 납을 조금 더 섞고, 플럭스를 바르고, 양쪽 다리를 번갈아 가며 조금씩 움직였다.

한참을 씨름한 끝에 결국 기존 콘덴서를 뺐다.

콘덴서 하나를 뺐을 뿐인데 거의 수리를 끝낸 기분이었다.

교체하려고 준비해둔 새 전해콘덴서들

겨우 콘덴서를 교체했다

기존 부품을 빼고 나니 이번에는 기판의 구멍이 납으로 막혀 있었다.

새 콘덴서의 다리가 들어가지 않았다.

다시 납을 녹이고, 흡입하고, 솔더윅을 대고, 구멍이 뚫렸는지 확인했다.

콘덴서를 빼고 난 뒤 PCB 뒷면에 남은 납땜 흔적
반복해서 납을 녹이고 흡입하던 PCB 뒷면 작업 구역

새 콘덴서를 넣을 때는 극성도 몇 번이나 확인했다.

전해콘덴서는 방향이 있기 때문에 반대로 연결하면 안 된다고 했다.

기판의 표시를 보고, 콘덴서의 음극 표시를 보고, 다시 기판을 봤다.

처음 하는 작업이라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

‘이 방향이 맞나?’

‘납이 너무 많이 붙은 것 아닌가?’

‘혹시 옆에 있는 부분까지 연결된 것은 아닌가?’

전문가가 보면 엉성했을 것 같다.

그래도 내 눈에는 일단 붙어 있었다.

마침내 콘덴서 교체를 끝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니터를 다시 조립했다.

전원 케이블을 연결하기 직전에는 조금 기대했다.

유튜브 영상이라면 이제 전원을 연결하고 제품이 살아나는 장면이 나올 차례였다.

전원을 연결했다.

후면 RGB가 켜졌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하단 전원 표시등은 들어오지 않았다.
MSI 로고도 나오지 않았다.
OSD도 나오지 않았다.

화면은 여전히 검은 상태였다.

“아, 안 되네.”

정말 이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모니터를 분해하고, 멀티미터를 사고,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다시 찾아보고, 챗지피티와 회로 자료를 보고,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도구를 주문하고, 처음으로 납땜까지 했다.

적어도 화면이 한 번 깜빡이거나 전원 표시등이라도 들어오면 뭔가 달라졌다고 생각했을 텐데,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수리는 실패했다.

부품을 바꾼 것이지, 원인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고장 원인을 찾은 것이 아니었다.

고장일 수도 있어 보이는 부품을 하나 교체했을 뿐이었다.

챗지피티가 관련 자료를 찾아주고, 측정 위치와 예상 전압까지 알려주기는 했다.

멀티미터로 실제 측정도 해봤다.

하지만 내가 회로 전체를 이해하고 값을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파워보드에서 어떤 신호가 언제 나와야 하는지, 메인보드가 전원을 켜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 패널이나 다른 보드에 쇼트가 있는지까지 확인하려면 훨씬 많은 지식과 장비가 필요했다.

기존 콘덴서가 실제로 고장 났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코드로 생각하면 로그를 열어보고 관련 문서도 찾았지만, 결국 가장 의심스러운 코드를 먼저 수정한 것과 비슷하다.

수정하고 다시 실행했는데 증상은 그대로였다.

다음에 비슷한 일을 한다면 부품부터 교체하지는 않을 것 같다.

먼저 전압을 측정하고, 어느 지점까지 정상이며 어디서부터 이상한지를 조금 더 체계적으로 확인해야 할 것 같다.

물론 그러려면 멀티미터 사용법부터 다시 공부해야 한다.

학교에서 배웠지만 기억나지 않으니,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것이다.

결국 새 모니터를 샀다

수리에 실패한 뒤 결국 새 모니터를 샀다.

삼성 오디세이 OLED G8 32인치 최신형이다.

수리비 40만 원대라는 말에 경악해서 직접 납땜을 시작했는데, 최종적으로는 멀티미터와 납땜 도구와 부품을 사고 새 모니터까지 샀다.

경제적인 선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새 모니터는 좋다.

그리고 삼성 감사제 너무 좋다.

정말 좋다.

새 모니터 박스에 먼저 자리 잡은 만양이

모니터가 고장 나지 않았다면 새 제품을 살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텐데, 결과적으로는 최신형 OLED 모니터로 바뀌었다.

고장 난 MSI 모니터는 살아나지 않았지만 내 책상의 화면은 다시 켜졌다.

해피엔딩이라고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화면은 나온다.

요새는 마음만 먹으면 뭐든 시도는 해볼 수 있는 것 같다

이번에 수리에는 실패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요새는 정말 마음만 먹으면 대부분의 일은 한 번쯤 시도해볼 수 있는 것 같다.

유튜브에는 작업 과정이 있다.
알리익스프레스에는 필요한 장비와 부품이 있다.
챗지피티는 제품 자료를 찾고, 필요한 부품과 측정 위치, 예상되는 값까지 설명해준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기억나지 않아도 다시 물어보며 시작할 수 있다.

물론 시도할 수 있다는 것과 잘할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나는 필요한 장비를 샀고, 영상도 많이 봤고, 멀티미터로 측정도 했고, 실제로 납땜까지 했다.

하지만 모니터는 살아나지 않았다.

그래도 예전 같으면 수리비를 듣고 포기하거나 그냥 버렸을 것이다.

이번에는 적어도 직접 열어보고, 안쪽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멀티미터로 찍어보고, 부품 하나라도 교체해봤다.

결과는 실패였지만 경험은 남았다.

다음에는 처음보다 조금 덜 헤맬 것 같다.

그리고 고장 난 76만 원짜리 모니터로 처음 납땜을 시작하기보다, 연습용 기판부터 사는 것이 좋다는 아주 중요한 교훈도 얻었다.

알리익스프레스에 검색해보니 당연히 연습용 기판도 팔고 있었다.

역시 없는 게 없다.

엔지니어들 화이팅

나는 콘덴서 몇 개를 교체하는 데에도 꽤 애를 먹었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 회로를 처음부터 설계하고, 부품을 고르고, 보드에 배치하고, 안전성을 검증했다.

또 누군가는 고장 난 제품을 보고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측정해서 찾아낸다.

정상적으로 동작할 때는 이런 과정이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전원 버튼을 누르면 화면이 켜지고, 소리가 나오고, 제품이 작동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당연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 많은 엔지니어가 계속 가설을 세우고, 실패하고, 측정하고, 다시 시도했을 것이다.

코드든 회로든 비슷한 것 같다.

원인은 처음 생각한 곳에 없고, 분명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아무 변화가 없을 때도 있다.

그러면 틀린 가설을 버리고 다시 찾아야 한다.

이번 모니터 수리는 실패했다.

그래도 눈으로만 봤던 납땜을 직접 해본 것은 꽤 재미있었다.

다음에는 무적의 380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멀티미터에 나온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조금 더 아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

오늘도 어디선가 안 되는 이유를 찾고 있을 엔지니어들.

화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