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km도 못 뛰던 내가 100일 만에 하프를 완주했다 (국제신문 부산마라톤)
3km도 못 뛰던 내가 100일 만에 하프를 완주했다
완주한 지 거의 한 달이 지났는데도, 그날 경험했던 상황들과 느낀 감정은 생생하다.
기록은 생각보다 느렸고(2시간 52분…), 심지어 거의 꼴찌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후회보다는 “아, 내가 진짜 해냈구나”가 더 크게 남았고, 끝난 후에 느껴지는 감격스러움 때문에 가슴이 뭉클했다.
요약
- 대회: 제27회 국제신문 부산마라톤대회 (2025-11-16, 부산 사하구 다대포해수욕장 일원)
- 종목: 하프(21.0975km)
- 목표: 완주 / (희망) 2시간 30분
- 결과: 2시간 52분, 결승선 닫히기 직전 꼴찌(?) 골인
- 준비: 100일, 누적 약 300km, 주 2~3회, 최장 18km
- 남은 이야기: “레이스 패트롤” 한 분이 끝까지 옆에서 같이 뛰어 주셨다
1. 왜 시작했나 (동기 회고)
내가 러닝을 시작한 이유는 거창하지 않았었다.
체중 관리와 건강. 그리고 언젠가 “풀마라톤도 한 번은?” 같은 마음. 그리고 회사 동료들의 회유도 꽤나 큰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처음에는 10km 지원을 하려고 했으나 단순하고 바보같이 “10키로는 4만 원… 하프는 5만 원? 만 원 차이잖아? 하프가 더 가성비네~“라고 생각하며 100일 준비하면 하프 정도는 뛰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집 앞을 뛰어보니 3km도 뛰지 못하는 저질체력과 옛날부터 있었던 갈비뼈 통증, 괜히 신청했나?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심지어 중간에 마라톤 신청을 취소해야지 하고 사이트도 몇 번 들락날락했었다.
2. 준비 기간과 루틴은 어땠나
준비 기간은 거의 100일. 그동안 나는 대략 300km 정도를 뛰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게 가장 크게 성공시켰던 요소였던 것 같다. 나는 원래 꾸준함이 약한 사람인데, 주 2~3회는 어떻게든 지켰다.
챗지피티를 나의 스승으로 삼아, 근거 있는 훈련 방법을 추천받았다.
- 주 2~3회 러닝, 근육과 인대·관절이 회복되는 속도가 다르다고 매일 운동은 추천하지 않았다.
- 장소: 집 앞 러닝 코스, 훈련에 너무 잦은 장소가 변경되면 적응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수 있기 때문에 신체적인 향상이 먼저였다.
- 방식
- 인터벌
700m 달리기 + 300m 걷기, 1키로마다 짧은 시간의 목표를 쥐어주고, 실패하면 1키로 쉬고 다시 도전을 반복했다 - ‘무리해서 계속 뛰기’보다 ‘끝까지 훈련을 지속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 인터벌
- 최장거리: 18km
- 하프(21km)를 앞두고도 18km까지만 뛴 건, 솔직히 불안했다. 25키로까지는 뛰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다.
무릎이 아픈 이유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뛰다 보니 하나씩 알게 됐다. 케이던스. 분명 처음에 챗지피티가 케이던스가 낮으니 보폭을 좁게 가져가라고 충고를 해 줬는데, 케이던스가 무엇인지 몰라서 무시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너무 중요했다. 나의 케이던스는 평균 130 정도였다. 뛰는 속도와 여러 가지를 고려해 170~180 사이를 맞추려고 노력했고, 뛸 때는 메트로놈을 키고 훈련했다.
3. 계획 vs 현실
계획은 단순했다.
- 1차 목표: 완주
- 2차 목표: 2시간 30분 (희망 시간)
현실은 이렇게 왔다.
- 완주는 했다
- 근데 2시간 52분이 걸렸다
- 그리고 내가 마지막이었다. (들어갈 때 꼴찌라는 소리를 들었다!)
완주를 목표로 했던 건 잘한 선택이었다.
첫 대회에서 기록 욕심을 내면, 끝까지 뛰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중간에 뛸 때 많은 도움을 주셨던 레이스 패트롤 분도 생애 첫 마라톤에 하프치고는 괜찮다고 하셨다.(응원하려고 하셨던 말이었겠지만..)
무리하지 말고 기록에 신경 쓰지 말고 완주를 목표로 같이 뛰자고 하셨다.
4. 대회 당일 경험
대회는 국제신문 마라톤(정식 명칭: 제27회 국제신문 부산마라톤대회)이었고, 11월 16일에 열렸다.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일원에서 출발해 을숙도대교 방향으로 달리는 코스였다.
(대회 안내: https://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800&key=20251112.22001003555)
훈련하던 코스는 거의 평지(약간의 업힐/다운힐)였는데, 대회 코스는 체감이 달랐다.
- 초반~중반: 내려가는 느낌이라 “어? 할 만한데?” 싶었다. 6분 30초 페이스를 이렇게 무난하게 뛰는 게 이상했다. 이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 남은 3km쯤부터: 계속 오르막
- 여기서 진짜 포기할 뻔했다
근데 그때, 레이스 패트롤(안전 관리해 주시는 분) 한 분이 끝까지 옆에서 같이 뛰어 주셨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분이 없었더라면, 진짜 마지막에는 포기했을 수도 있다. 전봇대 2개 거리는 뛰고, 1개 거리는 걷고를 알려 주며 진짜 마지막 1키로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다.
그리고 결승선.
들어갈 때 “이분이 꼴찌입니까!”라고 말하고 바로 결승선을 닫았다고 한다. (동료가 말해 줬다.)
…진짜로 내가 마지막이었다…
5. 결과
기록은 2시간 52분(평균 페이스 약 8분 09초/km).
2시간 30분 안에 들어오겠다는 목표는 실패였지만, 완주 목표는 달성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내가 느끼는 만족감은 ‘기록’보다 ‘과정’에서 온다.
- 일단 러닝을 시작했다
- 3km도 못 뛰던 내가 21km를 끝까지 갔다
- 무릎이 안 좋은 상태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내 페이스”로 완주했다
- 러닝을 시작한 이유(체중/건강)를 생각하면, 이 정도면 충분히 의미 있었다
6. 느낀 점
러닝이라는 것을 시작한 계기는 체중 감량에 가까웠지만, 내가 하는 취미에서 다른 사람과 부딪히며 경기, 대회를 나가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 메타인지도 되고, 앞으로 노력하면 저 사람만큼 뛸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분도 뛰시고, 요정 코스튬을 하고 뛰시는 분을 보며,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언제 또 하프나 풀마라톤을 뛸지는 잘 모르겠지만, 러닝은 몸만 나가서 뛰면 될 정도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담백하게 평생 해도 괜찮은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인간의 유전자는 50% 이상이 뛰는 것과 관련 있다고 하지 않는가!.)
7. 짧은 메모
- “기록은 남고, 완주는 더 오래 남는다.”
- 레이스 패트롤님, 그날 끝까지 옆에서 뛰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풀마라톤도 꼭 완주하겠습니다.